난 70년대 초반에 태어나 팔십년대 말에 대학에 진학했고 구십년대 중반에 졸업해서 아이엠에프를 겪으며 결혼생활을 시작한 삼십대 중반의 가장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수출 백억불 달성을 축하하는 축제의 물결을 바라봤고 어릴적 우상이었던 박대통령이 어느날 쓰러지고 곧바로 광주에서 시작된 폭동의 물결이 내가 살던 곳까지 밀려오지나 않을까 어린맘에 무서워해야 했다.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교복 자율화가 시작됐고 고교를 졸업한 후 다시 교복이란 것이 생겨났다. 학창시절 어릴적 봤던 고교얄개란 영화속 삶을 꿈꿨으나 시대는 변해 있었고 민주화를 갈망하며 거리에서 투쟁하는 선배 대학생들이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대학에 들어갈 무렵 시대는 이미 민주화 물결이 시작된 후라 투쟁이 한 물 가버려 몹시 허탈감에 시달렸다. 누구를 위한 투쟁을 하려 했는지도 지금은 모르겠다.
대학 진학 후 먹고 대학생의 전형인 선배들이 졸업후 잘도 취직하는 것을 보며 하루 종일 써클룸에서 기타나 치고 해지면 술집으로 향하는 것이 일과였으나 군대 다녀온 후 내게 다가온 현실은 대기업 취업 전제조건으로 붙은 토플400점과 토익 600점의 꼬리표였다. 난 후배들에게 토익이 뭐냐고 물어봐야만 했다.
어찌어찌 지내다 취업한지 일년여만에 아이엠에프를 맡아 회사는 청산절차를 밟았고 청년 창업의 꿈과 현실의 좌절 속에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은 학원강사로 일하며 미래를 계획하고 가꿔가는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왠지 내가 지나온 시간의 터널이 아직도 내겐 너무도 혼란스럽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난 여전히 촌사람일 뿐인가? 지난 삼십여년의 시간은 어제 가치 있던 것들이 오늘은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경험의 연속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젠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가려내는 것 자체가 무가치하게 여겨진다. 어차피 내일이면 나의 선택의 기준은 또 달라질 것이라는 허무주의가 스며든다.
예수님을 알고난 후 그 분의 명령들이 첨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점점 더 간절히 사모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특별한 경험들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인생의 철학을 깨닫기 때문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분의 말씀만이 결국 마지막까지 남을 영원한 생명이 된다는 믿음이 더욱 확실해진다.
인생이 아무리 허무하고 혼란스러울지라도 혹 그래서 인생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든 실패하고 절망하여 마치든 내가 들어가 안식을 누릴 곳은 따로 예비되어 있다는 이 약속만이 나의 영원한 소망이 되어 오늘 이 혼란스런 기억 속에서 내 영혼이 평안을 누리게 한다.
그리고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가끔씩 떠오르는 어릴적 추억들이 가슴 시리도록 그리워진다. 저녁때면 어김없이 마징가제트를 보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던 골목길은 언제나 활기찼다."무쇠팔 무쇠주먹 로케트주먹"노래하며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오던 그 골목길에 오늘 다시 가 서보고 싶다. 무쇠팔 무쇠주먹을 외치며...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하기 때문에 시린 가슴 (0) | 2006.02.26 |
|---|---|
| 우리 아이들의 미래 (0) | 2004.02.11 |
| 사랑과 기쁨 (0) | 2004.02.07 |
| 시작글 (0) | 2004.01.18 |
| Daum칼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0) | 2004.01.18 |